필자가 서울 둔촌동에 위치한 ‘한국사회체육센터’라는 곳에 택견교실을 개설하고 택견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운동을 끝내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택견을 배우는 중학생 녀석이 씩씩거리며 다가와서는 “선생님, 저 쪽팔려서 택견 못하겠어요!” 하고 항의하듯 투덜거렸다. 제자의 갑작스런 반항(?)에 조금 당황하여 “갑자기, 왜?” 하고 물었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쟤네들이 저보고 똥 싼 바지 입고 다닌다고 놀려요!”하는 것이었다.
그 녀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검도복을 입고 있던 또래의 녀석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키득거리고 있다가 필자가 바라보자 후다닥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택견을 할 때 입는 한복의 엉덩이 부분이 축 쳐진 것을 보고 친구들이 약을 올린 모양이었다. 어린 녀석들의 장난이라고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필자는 가슴이 찡하니 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택견은 일반 평민들이 즐기던 운동이라 일본무도처럼 특별히 ‘도복(道服)’이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다. 그저 평민들이 즐겨 입던 옷 그대로, 그 중에서도 주로 흰색 한복(民服)을 입고하였으니, 일본의 귀족인 사무라이들이 입고 있던 도복처럼 폼이 날 리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의 ‘하까마(はかま,일본옷의 겉에 입는 아래옷)’를 입은 우리나라의 청소년이 한복을 입은 우리나라의 청소년을 비하하고 있는 현장을 지켜보게 되니 한창 민족주의적 혈기가 왕성했던 30대 초반의 필자로서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또 한 번은 IT사업이 대단한 붐을 일으켰던 1990년대 중후반의 일이다. IT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필자의 지인이 택견 보급에도 도움이 되고 사원들의 건강도 신경을 써 줄 마음으로 택견을 지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그들의 회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강남의 한 스포츠센터의 체육관을 임대해 아침마다 택견을 지도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스포츠센터의 책임자가 필자를 만나자고 했다. “어려운 부탁인줄 알지만 택견도복 좀 바꿀 수 없습니까?” 무술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도복(엄밀히 도복은 아니지만)을 바꾸라는 비상식적인 말씀을 할 분이 아닌 체육계의 대선배님이셨기 때문에 필자는 깜짝 놀라 “무슨 연유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분은 난처한 얼굴로 “저는 뭐, 괜찮은데 실내 골프를 하는 VIP회원들이 아침마다 상복(喪服)입고 설치는 사람들을 보니 재수가 없어서 골프가 잘 안된다는 컴플레인이 심해서...” 정말 기가 막혔다.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흰 한복을 보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상복이라니... 그렇다고 갑자기 한복을 바꿀 수도 없고 스포츠센터는 VIP고객들을 놓칠 수도 없고... 그래서 필자는 제법 수입이 짭짤했고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이끌어 왔던 택견 수업을 그만두게 되었다.
한복에 얽힌 울화통 터지는 이야기는 아마 2박3일 텐트를 치고 해도 모자를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필자는 학생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게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강사의 신분임에도 한총련 집회가 있을 때는 단지 한복을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검문을 당해야했다. 지금이야 많이 좋아졌지만 1990년대에만 하더라도 생활한복을 즐겨 입는 필자는 스님이나 점쟁이 또는 박수무당 등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분들의 직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특별히 취급 받는 것이 너무 싫었다는 얘기다.
미국 LA도 아니고 더욱이 일본 동경 땅도 아닌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이 한국 옷을 입었는데 왜 이렇게 특별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비하당해야 하는지 정말 안타깝다. 필자는 여기서 한복이 얼마나 아름다운 곡선을 가지고 있는 옷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우리생활에 적합하고 편하게 만들어 졌는지 등 한복에 대한 자랑을 하지는 않겠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복만 입을 것이 아니라 청바지도 입어야 하고 양복도 입어야 하고 새로운 패션의 트랜드도 따라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 땅에서 만큼은 한복을 입은 사람이 특수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 그저 누가 점퍼를 입은 것처럼 또는 누가 그냥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것처럼 그냥 그렇게 옷을 입었구나 하고 편하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의 문화가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듯이 택견은 적어도 우리민족에게는 생소하거나 특수해 보이는 몸짓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당연한 우리의 몸짓으로 편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와 똑같은 성품의 선조들이 오랜 세월동안 이 땅에서 그냥 그렇게 움직여 왔던 우리의 몸짓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문화인 것이다.
본 칼럼은 2009년 무카스에 연재된 <택견꾼 도기현의 택견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