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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의 택견이야기 일곱] 신한승 택견의 미스터리

결련택견협회
2020-06-05 14:15 | 1,503

삼실총(三室塚)의 활개 올린 역사(力士)의 모습

 

 

‘고 송덕기(故 宋德基, 1893~1987)스승님’이 택견이라는 소중한 씨앗을 현대에 전달해 주신 분이라면 ‘고 신한승((故 辛漢承, 본명은 辛承, 1928~1987)선생님’은 그 소중한 씨앗에 싹이 돋게 한 분으로 두 분 모두 근대 택견 역사의 보물과 같은 존재이시다. 특히 신선생님은 택견의 무형문화재 지정(1983)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어 택견이 오늘날과 같이 잘 전수될 수 있도록 큰 기틀을 만드신 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업적과 상관없이 신선생님의 택견은 당신의 스승이신 송덕기스승님의 택견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아 안타까운 실정이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 편인 ‘택견이야기 여덟(잘못된 택견의 무형문화재 지정)’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결정적인 차이점 한 가지만 말해보려고 한다.

송덕기스승님과 신한승선생님 택견의 가장 큰 차이는 택견경기에서의 규칙에 관한 문제이다. 택견은 겨루기 중심의 경기무예이기 때문에 경기규칙이 달라지면 동작과 기술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사항이다. 택견경기는 고정된 제자리에서 일정하게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지는데 신선생님은 그 거리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무시하는 택견을 최종적으로 문화재로 지정하시고 말았다.

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은 일정하게 가까운 거리라는 택견만의 독특한 규칙이 없으니까 자연히 마주선 두 선수는 서로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멀리서 빙글빙글 돌며 상대의 허점을 찾아 공격할 기회를 노리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거리가 떨어져 있다 보니 가까운 거리에서 실시하는 ‘태기질(걸어 넘기는 기술)’ 보다는 멀리서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발차기가 우선되게 된다.

고정된 가까운 거리라면 상대의 하체공격을 굼실거리며 피하게 되지만 자유로운 거리 개념은 빠른 스텝으로 거리를 조절하며 피하게 되고 순발력을 높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약간 살짝살짝 뛰게 된다. 그리고 떨어진 거리에 있다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공격하는 상대의 ‘하이킥(High Kick, 얼굴을 차는 발차기)’에 대비하기 위해 ‘활개(손끝에서 어깨까지 팔 전체)’를 어깨위로 들어 얼굴방어를 하는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의 전체적인 경기모습은 사뿐사뿐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양팔을 얼굴 위로 돌리면서 상대의 주위를 돌다가 순간적으로 공격하여 치고 빠지는 현대의 일반 격투기와 같은 형태가 되고 말았다.(동영상1 참고) 이러한 경기형태가 좋은가 나쁜가와 관계없이 “그건 송덕기스승님의 택견 모습은 아니다.”라고 한마디로 단언할 수 있다.

동영상1 빠른 시일내에 업로드 시키겠습니다.

송덕기스승님의 택견은 두 택견꾼이 너무 붙거나 떨어지지 않은 일정하게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제자리에서 굼실굼실 품을 밟으며 팔을 밑으로 떨어뜨리고 실시한다. 택견의 경기규칙이 손으로 얼굴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얼굴을 방어할 필요도 없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활개를 올리는 것은 자신의 시선을 방해하고 전체적인 몸동작을 둔하게 만들기 때문에 양팔을 밑으로 내리고 편안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상대의 하이킥은 발이 위로 올라오기 전에 얼굴 밑에서 활개로 막아버리면 된다.

1983년도쯤으로 기억되는 활갯짓에 관한 신선생님과의 일화가 있다. 택견동작을 시연하실 때 양팔을 머리 위로 크게 휘저으시는 신선생님께 필자는 “송덕기스승님은 활갯짓을 어깨 위로 올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왜 그렇게 하세요?”라고 여쭤 본 적이 있다. 신선생님은 택견을 처음 가르칠 때 장소가 마땅치 않아 충주(忠州)에 있는 태권도장을 빌려서 했는데 태권도 수련생들과 택견하는 애들을 겨루기를 시켜 보았다고 하셨다. 택견하는 아이들이 붙기만 하면 태권도 수련생들을 곧잘 잡아 넘기지만 거리가 떨어지면 ‘돌려차기(발등으로 밖에서 안으로 후려차는 얼굴차기)’ 등의 공격에 얼굴을 자주 맞곤 하여 얼굴방어의 필요성을 느껴 팔을 위로 들어 올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얼굴방어 동작을 무턱대고 만든 것이 아니라 고구려 고분벽화인 삼실총(三室塚)에 있는 역사(力士)의 동작을 참고하여 활개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만드셨다는 것이다.(사진 1참고) 택견이 다른 무예와 겨룰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얼굴방어에 대한 동작이 추가되는 것이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필자는 별 이의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얼마 전 택견계의 통합을 위한 단체 간의 회의를 하는데 신선생님의 제자분들이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는 활갯짓을 반드시 경기규칙에 넣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택견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하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1984년에 촬영한 송덕기스승님과 신한승선생님의 견주기(태권도의 대련과 같은 것) 동영상을 보면 두 분은 고정된 제자리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활개를 편하게 내려놓은 상태에서 품을 밟으며 견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로하신 스승님의 동작을 이끌어내기 위해 신선생님은 연신 ‘선품(한 발을 앞으로 내는 것)’으로 발을 내어 주며 공격을 유도하고 스승님(당시 92세)은 주로 ‘좌우밟기(옆으로 굼실거리는 동작)’로 견제를 하시다 틈틈이 공격을 하시곤 하신다.(동영상2 참고)

동영상2 빠른 시일내에 업로드 시키겠습니다.

이렇듯 동영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한승선생님은 직접 몸으로 택견경기의 원형을 잘 보여주셨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거리의 개념을 무시한 택견을 문화재로 지정하셨을까? 신선생님은 분명 송덕기스승님으로부터 1970년대 초반부터 택견을 배우셨고 누구보다도 스승님의 택견을 잘 알고 있었을 터인데 왜 그렇게 다른 경기규칙의 택견을 문화재로 지정하셨는지 필자로서는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2020년 11월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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